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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수양회기행문] 코리안 루트(Korean Root)를 따라

커뮤니티노경수2010.09.12조회 2559

코리안 루트(Korean Root)를 따라

 

노경수 목사 정수행 사모

 

 

금번 전남노회 교역자부부 수양회를 참석해,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글로 남겨 이 글을 읽는 이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몇 자 적어본다.

 

중국의 심양과 단동, 통화를 거쳐 백두산과 연길, 용정, 도문 등으로 이어지는 여행 코스로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남북분단의 현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여행 및 수양회였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 40분 비행하여 중국 동북지방의 중심지인 심양(深陽)에 도착하여 곧바로 버스 투어가 시작 되었다. 남동방향으로 몇 시간을 가서 압록강변의 중국 최대의 변경(邊境)도시인 단동(丹東)에 도착했다.

바로 건너편이 북한인데 강폭은 비교적 넓지만 강변에 나와 있는 북한주민들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유람선을 승선해 손을 흔들고 인사말을 건네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아프다. 중국 단동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낙후된 자연 여건과 주변 환경이 한눈에도 다 보인다.

  

아픈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6,25 전쟁 때 폭파된 압록강 철교로 향한다. 북한과 중국을 잇는 유일한 육상교통로였던 철교는 그 날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후세(後世)에게 전쟁의 상흔을 교육하기 위해 폭파된 그대로 덩그란히 남아있다. 현재는 그 철교 옆에 새로운 교량을 놓아 두 나라 사이의 육상교통으로 이용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다시 북으로 방향을 돌려 백두산을 향해 간다.

  

백두산을 등정하는 데는 4곳이 있는데 동파는 북한에 위치해 있고 나머지 북파, 남파, 서파는 중국령에 속한다. ‘통화’와 ‘이도백하’라는 지역을 통해가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서파 코스를 택해 이동을 한다.

가는 내내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밭이 서서히 사라지고 점점 산악지대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서서히 S자형의 완만한 경사를 타고 위로 계속 올라간다. 가는 도중에 보랏빛의 구절초가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많이 피어있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해발 2744m인 백두산은 그 자체가 자연의 보고요, 다양한 식생대가 분포되어 있어 학자들의 연구 자료가 무궁한 곳이다. 산 아래지역에서 시작한 활엽수림대는 고도가 높아지면서 침엽수림대로 바뀌고 더 올라가니 고산지대의 야생화가 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에 가까운 고원지대는 이끼류가 덮여있고 정상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민둥산이다. 그 정상은 화산폭발로 인해 화산재가 회백색으로 덮여있어 모습 그대로 백두산(白頭山)이라 명명(命名)한단다.

  

버스가 더 이상은 올라갈 수 없는 종착지점에 도달했다. 거기서부터 900m의 고도를 도보로 가야 정상이다. 비교적 완만한 구릉지대가 정상까지 이어지는데 1236개의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은 상태로 왔기 때문에 힘겨운 걸음을 내딛기를 한참, 산 아래에서는 비가 와서 비옷을 입고 올라왔는데 더워서 그것마져 벗어 들고 또 오른다. 정상에 가까워서는 거센 바람과 급격한 기온하강으로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마지막 걸음을 떼자 드디어 정상이다. 천지가 비교적 선명하게 들어온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채 고요하고 평온한 모습 그대로다. 상상 속에서 그렸던 그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너무도 벅찬 감격과 환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천지는 모두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는 가이드의 말이 귀에 쟁쟁한데 우리는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가. 천지의 기후가 워낙 불규칙하고 기류 또한 불안정해서 그 누구도 천지의 날씨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산정상에서 상당한 깊이(300m)에 아래에 천지가 위치해 있다. 이 감격을 몇 컷(cut)의 카메라 필름에 담기에는 너무도 아쉬었다. 가파른 비탈로 둘러진 칼데라호인 천지는 커다란 호수 그 자체였다. 또한 그 모습을 제아무리 묘사(설명)를 잘 한 듯 눈으로 보는 것만 하겠는가? 큰 감흥을 안은 채 하산해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이제 우리 한민족의 슬픈 역사를 가슴에 안고 사는 조선족 자치주의 용정과 연길이다,

이곳 주민의 80%가 조선족인 까닭에 거리의 간판이 한글 일색이다. 주로 일제 강점기 때에 강제 징용이나 이주로 인해 이곳에 터를 닦고 사는 조선족 2, 3, 4세대가 주를 이룬다. 또한 해외(만주)독립운동의 본거지인 이곳이고 보니 민족성이 대단하단다.

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학교(현 용정중학교)에 들려서 방명록에 서명도 하고 그날의 애국지사들이 가졌던 뜨거운 애국심을 불 지펴본다. 가곡 ‘선구자’의 가사에 나오는 일송정의 푸른 소나무와 해란강은 차창 밖으로 보고 지나간다.

  

조중접경지역(朝中接境地域)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두만강 유역의 도문으로 향한다.

이곳의 두만강은 작고 협소한데다 주변의 공단지역으로 인해 오폐수가 유입이 되어 강물이 흑갈색이 되어 있었다. 죽어가고 있는 두만강에 강폭이 채 30m도 안되고 그 건너편은 북한이다. 군데군데 엄폐해놓은 북한 초소들이 눈에 들어오고 완전무장을 북한군 초병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기막힌 분단의 현실을 가슴 절절히 느끼며 저 젊은 북한군 초병들과 우리의 아들들이 언제나 완전무장을 해제하고 함께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두만강 위에서 보트를 타고 있는 내 눈에 하염없는 눈물만 흐른다.

흐르는 눈물을 감출 필요도 없다. 그저 감정에 솔직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마지막이 다가오는데 마지막은 열차로 이동한단다. 그것도 무려 16시간을 이동하는 대장정으로 도문에서 심양까지 저녁에 열차에 승차에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강행군이다. 우리나라의 무궁화호에 해당되는 완행열차는 3층 침대열차였다. 웅크리며 자는 잠, 쾌쾌한 냄새, 찌든 때의 홑이불 등이 북한이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보여준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만 5일에 해당하는 코리안 루트(Korean Root)의 대장정을 보내게 되었다. 중국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중에 요녕성의 수도인 심양과 우리 한민족 공동체인 길림성지역을 돌아보는 여행 및 예배를 겸한 수양회였다. 비록 몸은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함께 온 다른 교역자 부부들과의 아름다운 만남과 섬김이 있어 참으로 은혜롭게 마칠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이번 수양회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우리 민족에게 주의 긍휼이 하루 속히 임하길 간절히 사모하며 통일의 그날, 전쟁이 사라질 그 날을 위해 더욱 기도하게 되었다. 또한 세계 속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를 위해 우리가 도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디를 가든지 민족성은 잊지 말아야 우리의 선조들이 피땀 흘려 그렇게도 지키길 원했던 조국과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교훈을 얻고 깊이 생각하는 귀한 기회였음에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할렐루야.

댓글 2

  • 관리자귀한 글 감사합니다. 함께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기행문을 읽다보니 더불어 은혜가 됩니다.
  • 전정희노경수 목사님 글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혜스럽습니다 전정희 목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