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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정의

커뮤니티박형동2011.03.28조회 2479

 

따뜻한 정의


  아직 ‘따뜻한 정의’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다. 정의와 따뜻함은 짝지을 수 없는 것일까? 예를 들어 합리주의와 낭만주의가 대립하는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의 자살로 귀결되지 않고, 자베르 경감과 장발장이 서로를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되는 것 같은...

  프랑스 혁명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사건이지만, 그 혁명사를 읽으면 나는 소름이 끼친다. 그들은 정의를 내세웠지만, 길로틴이 길로틴에 의해서 목이 잘린 것처럼 혁명의 투사들은 그 정의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비참하게 희생되어 간다. 사랑 없는 정의만 부르짖는 곳에는 목이 잘린 시체들만 즐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념은 고상한 것이지만, 그 이념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때부터 인간미는 사라지고 만다. 때문에 프랑스 대혁명은 크게 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역사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끝없는 투쟁일 뿐, 거기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프랑스 대혁명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노동조합의 활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완전은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지만, 우리 모두는 아무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앞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불합리는 묻어두고 타인의 불합리를 심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또, 인간미란 무엇일까? 나는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가장 필요한 두 개의 덕목을 떠올린다. 그것은 정의와 사랑이다. 정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규범인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평화를 누린다. 사랑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섬기는 것인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행복을 누린다. 정의는 소극적인 덕목으로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예리하다. 사랑은 적극적인 덕목으로 화로처럼 따뜻하고 솜처럼 부드럽다. 이 두 개념은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다른 만큼 서로를 필요로 한다. 정의가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의 조합을 통한 개념 ‘따뜻한 정의'라는 개념을 만들고 싶다. 이것은 ‘깨끗한 사랑'이라는 개념과 동의어일 것이다. 왜냐하면 ‘따뜻한 정의'는 정의에서 따뜻함을 지향하는 개념이며, ‘깨끗한 사랑'은 사랑에서 깨끗함을 지향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 두 가지 덕목을 지닌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니 없는지도 모른다. 진정, 이 땅에 따뜻한 정의를 지닌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하고 따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신봉하는 기독교의 요체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호남신문 2008년 10월 4일)